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11년 러시아 총선 사태 (문단 편집) == 미완의 결집 == 선거 다음 날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대도시에서 부정선거 규탄을 외치는 시위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모스크바에서는 친 푸틴 세력과 반 푸틴 시위대가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러시아 군경이 반 푸틴 시위대만 체포하는 바람에 오히려 러시아 국민들의 반 푸틴 성향이 더욱 강해지는 결과만 낳게 되었다. 10일에는 휴일을 맞이하여 [[소련 붕괴]] 이래 러시아 역사상 가장 큰 시위가 일어났다. 이 시위는 [[크렘린]]이 허가하였기에[* 관제 시위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불법으로 규정하지 않았다는 이야기.] 언론들도 보도할 정도로 이례적이었다. 그러나 야권은 푸틴을 정치적으로 끝장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음에도 푸틴의 숨통을 끊을 수 없었다. '''이 분위기를 끌어갈 만한 인물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한국으로 치면 [[양김]] 같은 인물이라고 보면 된다. 정치에서 대표성이 중요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 괜히 [[바지사장]]이라도 내놓는 것이 아니다.] [[올리가르히]](신흥 재벌)[*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혼란 속에서 국영기업과 각종 부동산 등을 거의 헐값에 불하받아 급격하게 성장한 신흥 재벌들. 이들은 [[공산주의]] 체제 시절 인맥을 바탕으로 순식간에 경제 권력을 장악해서 러시아의 상위 1%로 부상했다. 당연히 러시아의 보통 사람들과는 엄청난 괴리감이 있고 집권 초창기 푸틴의 절대적인 인기는 이 올리가르히들의 횡포를 강력한 국가 권력으로 찍어누르면서 시작되었다.] 출신 후보들은 신분상 시위대의 목소리를 대변할 인물이 되지 못했고 공산당이나 극우 정당도 푸틴을 대체할 만한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러시아가 옛 소련의 중심지라고 해서 현재도 공산당 등의 좌익 정당이 대중적인 지지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러시아의 경제가 악화되고 있으나 최소한 생필품 걱정은 없었던 전성기 소련의 향수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사라졌고 특히 반푸틴 성향이 상대적으로 강한 2~30대는 오히려 소련의 붕괴로 인한 개판 5분 전인 상황을 생생히 기억하는 세대이기 때문에 공산당과 사회주의에 강한 염증을 나타내기도 한다. 더불어 옛 소련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중장년층도 이땐 최소한 먹고살 걱정은 덜했지라는 감정을 느낄 뿐이지 절대 소련이 부활해야 한다는 감정을 느끼는 게 아니다. 그리고 러시아 연방 공산당과 소련 공산당과의 연계점을 찾기도 어렵기도 하고 러시아 연방 공산당의 삽질도 너무 많다.] 러시아를 뒤흔들었던 시위대의 열기는 [[2012년]] 대선까지 이어지지 못한 채 블라디미르 푸틴이 3선에 성공하는 결과로 막을 내렸는데 이 선거에서도 [[체첸]]에서 득표율 '''107%'''인 지역이 나왔다. [[2014년]] [[우크라이나]] 동부에서도 벌어졌다. 그런데 2014 우크라이나 조기 대선에서도 부정선거 의혹이 불거졌다. 중앙선관위에서 발표한 투표율이 약 60%인 1천 8백만여 명 수준인데 문제는 최종 투표자 수가 2천 5백만여 명이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약 140%'''에 달하게만든 7백만이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단 말인가. 결국 이런 부정투표 의혹은 [[유로마이단 혁명]]과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크림 반도 위기]]로 이어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